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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야기

드라마 추적자를 보며 2007년 12월을 떠올리다

 

<드라마 추적자의 손현주와 김상중 - 출처 : SBS 추적자>




드라마에는 흔히 '명장면'이라는 것이 꼭 등장한다. 이 같은 말은 드라마 제작진이나 배우가 직접 언급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언론에 의해 그럴듯하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어왔다. 그러나 7월10일 방송된 SBS 드라마 <추적자>의 한 장면은 어쩌면 한국 드라마 역사상 드물게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명장면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대선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 말이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추적자>의 명장면

방송이 처음 시작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딸과 아내를 죽게 만든 원흉인 강동윤(김상중 분)에게 승리다운 승리를 거두지 못했던 백홍석(손현주 분). 하지만 방송 7주차에 접어든 14회가 되어서야 드디어 백홍석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강동윤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들렸던 아버지의 이발소에 미리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강동윤을 자극하여 그의 입으로 직접 진실을 말하게 만든 것.

하지만 지지율 70%를 넘나드는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동영상을 대선 투표날 오후에 방송하고자 하는 방송국은 별로 없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대통령이 될 강동윤의 힘을 모두가 겁냈던 것. 그러나 단 한 사람. 서영욱(전노민 분)은 달랐다. 강동윤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그는 자신의 입김이 닿는 방송국에 힘을 실어주며 강동윤이 직접 진실을 말하는 동영상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에도 강동윤은 동영상이 조작임을 주장하며 버티기에 나섰다. 그러나 강동윤의 처제인 서지원(고준희 분)이 강동윤의 부인 서지수(김성령 분)가 백홍석 계좌로 20억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국민들에게 동영상은 조작되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 시각이 오후3시, 투표율은 38%, 강동윤의 출구조사 지지율은 63%. 여전히 어려운 싸움이 예상되었다.


<수 많은 시민들이 대선 투표를 위해 줄 서있는 모습 - 출처 : SBS 추적자>

 

 

그러나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오후 3시 38%에 머물렀던 투표율이 단 1시간 만에 13%나 급등한 것. 수많은 시민들이 깊숙히 넣어 두었던 선거 안내문과 투표 공보물을 꺼내들며 하나 둘씩 투표소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절대적인 믿음을 보내주었던 대상이 단 한 순간에 악으로 돌변하면서 그 악을 직접 심판하기 위해 투표라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수 많은 행렬이 드라마에 등장한 순간 가슴 한 켠으로부터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단지 '백홍석이 드디어 억울함을 풀 수 있겠구나', '강동윤이 드디어 벌을 받겠구나'라는 것으로부터의 감동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국민들이 직접 진실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모습에 더 큰 감동이 전해진 것이었다.


2007년 12월이 떠오른 <추적자>

10일 방송된 <추적자>를 보다보면 감동도 감동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실제 우리나라에 있었던 한 사건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2007년 12월 16일, 대선 직전에 공개되었던 이른바 'BBK동영상'이다. 이 동영상에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2000년 10월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에서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모습이 담겨있어 큰 논란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주어'가 빠져있다고도 하지만 분명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동영상에서 "전 요즘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을 하기로 생각, 지금 정부에다 제출을 해서 이제 며칠 전에 예비허가가 나왔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 각종 조사에서 BBK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가 아닌 것으로 알려지긴 했으나 공개된 동영상은 분명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대선정국이 요동친 것은 당연했던 일.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 처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당시 투표율은 2002년 대선의 70.8%보다 낮은 63.0%. 비록 대선사상 가장 큰 차이인 530만표 격차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긴 했지만 통상적인 가정으로 투표율이 높아지면 보수층보다는 진보층에 더 많은 득표가 이루어져왔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낮은 투표율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투표율을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한 강동윤의 표정 - 출처 : SBS 추적자>

 

 

그렇다면 위 가정에 이어서 만약 드라마 <추적자>처럼 시민들이 진실을 알기 위해 투표소를 향해 더 많이 달려갔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직 드라마에서도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 결과는 예측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드라마와 현실의 상황이 다른 것도 있다. <추적자>에서 서지원이 20억이 송금된 계좌를 공개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실제 거래내역 등에서 명확한 증거가 부족했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유권자의 판단을 어느 한쪽으로 쉽게 결정하기 힘들게 한 요소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BBK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100%확신을 주지 못한상태에서는 투표율이 높다고 해도 다른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진실을 향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담아 투표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더욱더 많아진다면 꾸며지고 거짓된 것이 아닌, 진정한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드라마의 명장면을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명장면으로 만들어보자. 2012년 12월에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오마이스타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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