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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영화리뷰(국내)

[YES24블로그축제][영화리뷰] <파주> - 그건 사랑이었을까?

 
 
 밤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의 부두를 거닐어 본적이 있는가? 그곳을 거닐다 보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며 함께여도 함께가 아닌 묘한 기분이 든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니면 위화감이라고 해야할까? 여기 그런 뿌옇게 안개낀 밤을 평생동안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파주>속의 두 사람 얘기다.
 
 
<다른 버전의 포스터도 있지만 좀 더 영화 이미지와 맞다고 생각하는 포스터들>
 
 뿌연 안개속을 해쳐가며 은모(서우)가 3년만에 파주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 <파주>는 인물들간의 사랑을 미스터리하게 풀어가는 영화다. 인도여행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 은모는 친구 미애(김예리)가 있는 철거촌에서 신세를 지게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형부인 중식(이선균)을 만나게 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언니와 관련된 소문을 듣는다. 한편, 학생운동을 하던 중식(이선균)은 8년전부터 자신의 첫사랑 자영(김보경)과의 원치않은 이별 후 형이 있는 파주로 내려와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교회일과 공부방 봉사를 하며 지내던 중식은 공부방 제자인 은모의 친언니 은수(심이영)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평소 중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은모는 가출을 하게 되고 같은날 은수는 사고로 죽고만다. 그 후 집에 돌아온 은모와 중식의 동거가 시작되는데...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한 상태로 내용을 말해보자면 대략 이정도로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않는 사람은 읽기를 중단해주기를 바라며 글을 써볼까 한다.
 
 
<각자 부모님을 일찍 여읜 상태에서(중식은 짐작이지만..) 형과 함께 살아온 중식과 언니와 함께 살아온 은모. 그 둘이 상처를 입은 후 보여지는 이 두 장면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두 인물이 가진 정신적 고통이 느껴진다.>
 
 내가 본 영화 <파주>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죄의식과 컴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첫 사랑이자 선배의 부인이기도 한 자영과의 섹스도중 뜨거운물에 화상을 입게 된 아기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은수와의 결혼 후 섹스를 거부해왔던 중식. 은수의 노력과 애원 때문인지 본인의 성욕과 결심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식은 어느날 은수와 섹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날. 중식때문에 괴로워하는 은수로 인해 중식을 점점 증오하게 되던 은모는 언니를 위해 돈을 벌려고 가출을 결심하게 되지만 본인의 실수로 가스폭발 사고가 나고 은수는 그로인해 죽게 된다. 은모는 그 사실을 모른체 친구와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중식은 화제의 흔적을 보던 중 은모가 자신을 증오해왔고 또 은모로 인해 가스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진실을 은모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죄의식을 가진체.
 
 그 후. 중식과 은모의 동거가 시작된다. 형부와 처제 둘만의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동거. 은수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지 못하는 은모는 증오하던 중식에게 점점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어릴때 부모를 여의어서 은수를 엄마처럼 여겼기에 그런 언니를 뺐은 중식을 처음에는 증오했지만 언니를 잃은 후, 파더 컴플렉스로 인해 중식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시점부터 아버지를 겪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필시 아버지로부터의 부성애를 제대로 겪지는 못했던 은모였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기위해서 사랑을 먼저 주려고 노력한다. 은모는 중식에게 사랑을 주려한다. 하지만 중식은 그러한 은모의 사랑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식 또한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마더 컴플렉스를 겪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어린 여성에 대한 이성적인 사랑을 느끼기 보다는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성을 사랑할 확률이 클 것이다. 실제로 영화속 중식이 진정 사랑한 여성은 선배인 자영이 아니던가? 그리고 죄의식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바로 자영과의 사건 때문이었다. 이러한 요소를 다른 곳에서도 찾아본다면 근처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가끔씩 등장하는 보스(이경영)에 대한 은모의 시선이다. 비록 보스도 은모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상황이 보이기는 하지만 은모는 그 이상으로 보스에 대해 적대감 보다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기 때문이며 이는 영화의 마지막. 미애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은 중식에게 시작되었던 은모의 감정선의 시작점과도 같은 상황이다. 중식은 은모와 동거하는 동안 한번도 은모에 대한 이성적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다. 그저 처제이기에 잘해주었던 것이다. 이는 자영이 중식의 집에 찾아와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냐며 따지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은모는 그것을 부성애로 인식했을 것이고(아니 인식하고 싶어했을 지도) 그랬기에 사랑했을 것이다. 보스는 단지 택시에서 은모를 한번 만났기에 신경을 써주었고 은모의 형부가 골치아픈 철거촌의 위원장이기에 거래를 한것이다. 하지만 은모의 마지막 눈빛은 그 것을 그 이상으로 느꼈음을 보여준다.
 
 
 
<비록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인물들>
 
 앞서 말한 죄의식에 대해서 한번더 말하려면 꼭 언급해야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저게 뭐야?'라고 했을지 모르는 장면이다. 바로 영화의 마지막. 중식이 은모에게 '난 단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은모를 안으려고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초반, 은모가 스승의 날 기념 장난을 친 다음 은수의 손에 끌려가 사과를 강요당했으나 사과는 커녕 울면서 말하는 장면 만큼이나 왠지 뜬금없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적이었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정말 필요한 장면들이였다는 거다. 초반의 그 장면은 은모가 은수를 엄마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문제의 마지막 장면. 크게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중식은 은모를 이성으로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
 
 중식이 마더컴플렉스를 겪었다는 전제하에 난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모는 자신의 언니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동시에 중식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싶어한다. 어쩌면 언니에 대한 진실보다 중식에 대한 진실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식은 다르다. 중식은 언니에 대한 진실이 중요하며 숨기고 싶어한다.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일이며 또한 은모에게까지 죄의식을 전가하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단 한순간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은모에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은모의 질문. '이게 저한테 할 수 있는 모든 얘기에요?' 이 질문을 듣고나서 중식이 한 행동은 은모를 안으며 섹스를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은모는 이를 뿌리치고 도망을 가버린다. 중식에게 있어서 '사랑'이 모든 얘기가 아니라 '은수의 죽음의 진실'이 모든 얘기이기에 이를 합리화 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모에게 이는 합리적이지가 않다. 왜냐하면 은모는 중식이 자신을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적이 없다고 한말이 거짓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중식은 보험사기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스스로 원한 일이 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은모가 자신을 고발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중식은 그것으로 자신의 죄의식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을 것이다. 자영과의 섹스로 생긴 죄의식은 아이가 화상에서 완전히 나음으로써 정화가 되었지만 은수의 죽음은 정화가 되지 않았었다. 은모가 사라져버렸었기 때문에. 하지만 은모도 돌아왔고 언니의 보험금도 그녀에게 돌아갔으며 무엇보다 자신은 감옥에 오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중식은 죄값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중식의 형이 은모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아도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을 것이다. 은모를 생각하는 마음에서도 그랬겠지만 자신을 위해서. 이제는 죄의식이 없어질 자신을 위해서.
 
 
<박찬옥과 서우는 왜 그들이 한국영화계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는지 다시한번 일깨워 주었다.>
 
 영화 <파주>는 영화다운 영화일까? 내가 생각하는  영화다운 영화는 딱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식이 은모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은모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사람들이 나누고 담론이 벌어지며 느낄 수 있기에 이 영화<파주>는 영화다운 영화라고 난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밤안개 속에서 살아가던 중식과 은모는 과연 그 곳을 빠져나갔을까? 스스로가 생각하는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어쩌면 진실이란 시간이 지나면 덧없어 지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지만 말이다.
 
<사진출처 - 다음,네이버 영화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