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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이야기

박용하의 죽음, 언론의 빈소취재경쟁이 멈추기를 바라며



배우 박용하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자살로인한 죽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생전에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며 예정된 작품도 있었고 또한 평소 성격이 밝았기에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웠다고 한다. 그의 죽음이 더욱더 안타까운 부분이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까지 이끌게 했는지 그 이유는 이미 세상을 등진 그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여러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에 관한 추측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한다.



언론의 과도한 빈소 촬영경쟁, 과연 정당한가?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이 죽음을 맞이할 경우 국내의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치열한 취재경쟁이 벌어진다. 죽은자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인터넷기사의 클릭수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들 뿐이다. 말로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글과 말에서 안타까움을 밝히지만 과연 진정 그런마음으로 취재를 하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비통에 빠져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조문온 유명연예인들에게 현재의 심경을 어떻게든 물어보기위해 달려든다. 그들의 심경이 어떻겠는가? 그걸 꼭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운구차가 고인과 함께 빈소를 빠져나갈 때는 더 가관일 때가 많다. 차 앞을 가로막으면서까지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해야 하는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말이다.


물론 취재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데스크에서는 어떻게든 대박 조회수나 높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건수를 찾아오라고 난리일터. 현장에서 일하는 취재진의 심정은 오죽하랴. 하지만 어떨때는 과연 그들의 심정이 과연 복잡하기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묻지마'취재가 성행하곤 하니 그들에 대한 이해의 심정은 그리 오래가지를 못한다. 



과연 언론만의 잘못일까? 우리의 잘못은 없을까?

하지만 이러한 취재행태가 과연 언론만의 잘못일까? 그들이 이렇게까지 취재경쟁을 하는 이유는 이러한 방식의 취재 결과물에 대해서 실제로 대중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기사를 클릭하거나 혹은 TV를 통해 빈소에서 오열하는 조문객들의 표정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박용하 빈소'라는 단어가 상위권에 올라있기도 하다. 우리가 너무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언론들은 그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서 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 대중의 책임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론이 그간 연예인의 빈소표정 취재를 대부분 자극적으로 해왔던 것에 대한 일종의 조건반사적 반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아무리 높은 판단력을 가지고 자극적이지 않은 뉴스를 보려고 해도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자극적인 빈소표정의 홍수속에 그렇지 않은 뉴스만을 클릭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거의 모든 매체의 거의 모든 글과 영상이 자극적인 것 뿐인데 어떻게 그것을 구분해낸단 말인가.



더이상 이런식의 취재는 사양한다.

이미 이 시대는 사람의 죽음마저 돈이 되는 세상이다. 한 연예인, 아니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언론의 경쟁적이고 자극적이기만한 빈소의 취재풍경은 단순히 돈을 위한다는 생각밖에 안드는 더러운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고인을 위해서도, 대중을 위해서도, 또한 언론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위해서도 이러한 취재방식은 스스로가 가이드라인을 확실하게 정해서 이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눈꼴사나운 풍경을 매번 지켜봐야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