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 - 출처 : 붕가붕가레코드>
2008년 11월 22일 자정이 넘은 시각. 초보 진행자 이하나가 MC를 맡은 음악프로그램 <이하나의 페퍼민트>가 첫 선을 보인 시각이다. 논란 속에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막을 내린 후 급하게 편성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첫 회. 하지만 이날 첫 방송이 주목받았어야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그날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날이기 때문이다.
6월 7일, 2년여만에 컴백한 에피톤 프로젝트의 정규 2집앨범은 공개되자마자 벅스,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주요음원차트에서 이른바 '올킬'을 달성하며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그의 콘서트 티켓 또한 하늘의 별따기 처럼 구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성공적인 컴백.
온오프라인 음원 시장은 몰론, 드라마와 영화 OST에는 빼놓지 않고 인디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광고시장에서도 유효하다. 공연장은 이미 수 많은 팬들로 가득차버린지 오래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올림픽공원의 올림픽홀 단독공연도 최근 수 차례 이루어질 정도다. 인디음악이 대중가요계를 넘어서 대중문화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10cm - 출처 : 10cm>
아이돌 음악과의 차별화가 성공을 거두다
최근 성공하고 있는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잘 들어보자.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독특한 밴드 이름도 그렇고 가사 속에 위트가 넘치며 스토리텔링의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그리고 음악이 그렇게 어렵지만도 않다. 매니아들의 음악이 아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20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당장 앞서 언급했던 이들의 공연장에 가보시라. 모르긴 몰라도 수 많은 20대 여성들로 가득찬 봄날의 꽃밭과도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성들도 물론 있겠지만 여성들에 비하면 그 수가 그리 많지 못하다.
인디음악이 20대 여성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 것은 비단 감성을 자극한 것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남과 다르다'라는 요소가 인디음악엔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음악이 장악해버린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디음악은 과거 모두가 PC를 쓸 때 나만 Mac을 쓰는 것과 같은 차별성과 함께 아이덴티티를 형성해주기에 적절한 것이었다(물론 Mac은 보통의 PC보다 비싸기도 했었지만 인디음악은 아니다.)
물론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인디음악이 지금과 같은 대중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보다 다양해진 매체는 직접 공연장을 찾거나 CD를 구매하기 전에는 접하기 어려웠던 인디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방송국에서도 보다 특정 시청자층을 잡아야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인디아티스트들의 섭외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퀄리티에 조금 손해를 보긴 하겠지만 많은 비용이 드는 스튜디오 녹음이나 정규앨범 작업을 하기보다는 홈레코딩과 싱글 작업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음원을 발표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들은 인디음악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어 지금과 같이 성공한 인디아티스트들을 다수 배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위기일 수도 있을 인디음악의 르네상스
지금의 인디음악이 아이돌 음악과 함께 대중음악 시장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축으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확실한 타겟도 확보되어 있고 수 많은 연습생들이 아이돌 소속사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수 많은 밴드 지망생들도 홍대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인디음악의 상업적인 성공은 대부분 방송이나 영화에서 음악이 등장한 후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며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꾸준한 활동을 펼치던 중 방송을 통해 폭발력을 얻게 된 것이긴 하지만 이 같은 성공경로는 인디음악의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 하나다.
분명 인디음악은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동시에 위기에 빠져있다. 무엇보다도 정체성의 고민이다. 과거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록음악의 상업적인 모습을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본인의 음악이 그렇게 활용되어지는 것에 절망했고 이는 결국 자살로 이어지고 말았다(그것이 자살의 모든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는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 후 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은 정체성에 고민을 하게 된다고 한다.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함께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지원 속에 음악작업을 하고 엄청난 수익까지 올리게 되는 소수의 인디 가수들. 배가 부르다고 음악이 안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디라 함은 대중문화의 아웃사이더와 같은 존재이며 독립적인 작업환경을 통한 창작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성공은 그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인디 아티스트의 고민일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각자 가질 수 있는 인간적인 고민이라면 점점 획일화되는 음악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고민이다. 분명 인디 음악은 개성이 넘친다. 하지만 그 넘치는 개성 속에도 흐름은 존재한다. 크라잉넛의 성공 후 수 많은 펑크밴드가 등장했고 10cm의 성공이후에는 거리와 공연장에 잼배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음악을 따라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이미 그런 종류의 음악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 흐름 속에 휘말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어라? 얘네가 뜨니 다들 저런 음악만 하네?'라는 생각 말이다. 이는 수 많은 아이돌 음악의 몰개성화에 염증을 느끼는 것과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홍대 음악씬에는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걱정은 기우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점은 다음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홍대 클럽 공연장의 몰락이다.
<클럽 빵에서 공연하는 밴드 하이투힘의 모습>
지금 당장 홍대의 공연장으로 달려가 보라. 일렉트로니카나 힙합음악이 틀어지는 춤추는 클럽이 아닌 밴드가 공연을 하는 클럽으로 말이다. 주말마다 수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을 것만 같은 공연장에는 많아야 20~30여명의 사람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정도도 많은 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공연의 경우 10명 내외인 경우도 많다. 다양한 음악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듣는 사람이 부족하다. 한국 인디음악의 뿌리와도 같은 홍대 클럽 공연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 관객이 적은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할 터. 하지만 지금의 관객 수는 분명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해보면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독이 되었을 수도 있고 과거보다 밴드의 공연 외에 홍대에서 즐길거리가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이미 스타가 되버린 인디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전보다 홍대에서 쉽게 보기 힘들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며 예를 들어 10cm가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펼친다고 한다면 작은 공연장은 터져버릴 것이다. 이는 서로를 위해서도 좋지 못하다. 당장은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홍대 클럽 공연장은 사실상 그 명맥을 이어가기에 급급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지 오래다. 이는 또한 클럽 공연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인디 밴드들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간다. 음악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생활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잘 되는 음악을 향해 본인의 음악적 방향을 틀어버릴지도 모르는 유혹에 빠지게 되며 결국 몰개성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다수가 즐긴다는 본질적 의미와는 다르게 일부의 성공으로 기억되는 지극히 극단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디음악 또한 다르지 않다. 일부의 성공을 전체의 성공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지금도 끼니를 대충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때워가며 좁은 자취방에서 주인의 눈치를 봐가며 연습을 하는 인디 뮤지션들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국카스텐 - 출처 : 예당엔터테인먼트>
이제는 성공 그 이후를 준비해야할 때
홍대 앞은 여전히 활기차다. 어쩌면 위와 같은 걱정들이 기우일 수 있을 만큼 수 많은 사람들이 인디음악과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 같은 움직임들은 분명 한국 인디음악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의 의식있는 움직임 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예방될 수는 없다. 인디 음악인 뿐만아니라 그 음악과 문화를 사랑하는 대중들이 행동하지 않는 다면 지금 우리가 즐기는 인디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어 버릴 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되면 그때서야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후회하곤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리고 연인이든 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인디음악, 이제는 지키내기 위한 행동을 시작할 때다.
* 이 글은 편집된 상태로 오마이뉴스의 오마이스타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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